{ 만국화답 } [ 광주사태 최규하 대통령 담화문 ] 작성자 : 지만원 작성일 : 2020-05-06 17:43 원제목 : 5월 25일의 광주 (최규하 대통령이 광주수복 작전 직접 챙겨) 5월 25일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이 날을 기점으로 하여 광주사태는 강경파 학생수습대책위원회와 재야인사들이 지배하게 됐고, 정부와의 대화나 협상의 주제도 광주시의 치안을 수습하는 차원을 떠나 정치적 이슈로 바뀌게 됨으로써 광주사태의 평화적이고 자율적인 해결은 극히 어려워지게 됐다. 홍남순 변호사와 김성용 신부는 김종배 학생수습대책위원회 부위원장에게“현 단계에서 무기를 반납해서는 안 되며 계속 강경하게 투쟁하라, 나는 죽을 각오를 하고 목욕까지 하고 왔다. 학생들도 요구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총기를 반납하지 말고 끝까지 투쟁하라”고 강경투쟁을 주문했다. 이런 지시와 격려를 받은 김종배, 윤개원(윤상원 28, 서점종업원 위장취업, 5.27 도청앞에서 자상으로 사망) 등 학생대책위원회 강경파는 25일 밤 10시,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비상계엄 해제, 정치일정 단축, 김대중 석방 등 정치적인 문제를 학생대책위원회의 대정부 요구사항에 포함시키며 학생대책위원회를 YWCA 인사까지도 포함한 범 투쟁기구로 확대 개편하기로 합의한 후에 무기반납을 주장하는 김창길 위원장을 축출하고 강경파인 김종배를 새로운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 학생대책위원회 > 참고로 위 개편된 학생수습위원회 간부들의 인적사항은 다음과 같다. 위원장 =========== 김종배 (26 학생 무기징역) 대변인 =========== 윤상원 (28 윤개원, 서점직원 화상사망) 외무담당부위원장 = 정상용 (30 사원 무기징역) 내무담당부위원장 = 허규정 (27 학생 15년형) 기획실장 ========= 김영철 (32 사원 7년형) 민원실장 ========= 정해직 (29 교사 5년형) 상황실장 ========= 박남선 (26 골재운반운전수 무기징역) 보급부장 ========= 구성주 (26 건재상 2년형) 홍보부장 ========= 박효선 (29 교사, 전남대 국문과 졸) 조사부장 ========= 김준봉 (21 사원 5년현) 기동타격대장 ===== 윤석루 (20 양화공 무기징역) 경비담당 ========= 김화성 (21 종업원 5년형) 재야 종교인들은 25일 오전에 남동성당에서 집회를 갖고 현 상황을 중대 사태로 규정을 하고“피의 대가 없이 물러날 수 없다”면서 김대중 석방, 계엄령 해제를 요구하였다. 홍남순, 이기홍, 이성화, 조아리, 이애신, 장두석, 조비오, 이종기, 김성용, 이기홍 등 강경파 재야인들도 YWCA 총무실에서 회동을 갖고 김대중 석방, 계엄령 해제, 정치일정 단축(국민연합 주장의 반복)을 정부에 요구하고 관철될 때까지 강력하게 계엄군과 투쟁하기로 결의하고 이날 16시경 정시채 전남 부지사를 찾아가 학생대표인 김종배 학생수습대책위원장을 배석시킨 가운데에서 결의된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계엄군의 후퇴이후 정부는 시위를 종식시키기 위한 호소를 여러차례 했다. 5월 23일에는 정래혁, 문형태 등 호남 출신 정치원로들이 광주 KBS 방송에 나와 사태의 원만한 수습을 호소했고, 이희성 계엄사령관도 시민들의 자제를 호소하는 담화문을 발표했고, 5월 24일에는 윤성민 1군사령관이 광주시민의 자제를 호소하는 선무방송을 하였으며, 소준열 광주지역 계엄분소장도 5월 22일부터 5월 26일까지 매일 광주시민수습대책위원회 간부와 학생수습대책위원회 주도 학생들을 만나 무기 반납과 치안회복을 호소하고 광주시민들의 정당한 요구는 최대한 수용할 뜻을 전했다. 그러나 광주는 5월 25일에 들어서면서 이미 다른 세상으로 치닫고 있었다. 광주의 협상 대표가 강경파들로 바뀌었고, 이들은 계엄해제, 김대중 석방, 정치일정 단축 등 김대중이 주장했던 정치적 요구를 들고 나옴으로서 모든 협상은 무위로 돌아갔다. 사정이 다급하게 돌아가자 최규하 대통령이 급거 광주에 내려왔다. 17시 40분, 광주 전교사에서 최규하 대통령은 라디오를 통해 광주시민의 자제를 호소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 광주재진입 작전 계획지침 입안과정 (상무충정작전) 과 세부 작전계획서 작성 > 5월 23일에 광주재진입작전 기본계획안이 승인됨에 따라 소준열 장군은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매일 이희성 계엄사령관에게 전교사가 작성한 세부 작전계획을 보고한 후 이희성 계엄사령관의 수정 지침을 받아 세부작전계획을 발전시켜 나갔다.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최종 승인한 소준열 전교사 사령관이 입안한 광주재진입 작전계획의 내용은 무장 시위대가 점거하고 있는 중요거점인 전남도청은 3공수여단 특공조가, 광주공원은 7공수여단 특공조가, 전일빌딩, 관광호텔은 11공수여단 특공대가 기습점령하고 20사단은 특전사 특공조가 목표지점을 점령하면 이를 인계 받아 광주시내의 치안을 회복시키며, 31사단, 보병학교, 포병학교, 기갑학교 병력은 후방지원과 광주시 외곽선을 봉쇄한다는 것이었다. < 광주 재진입작전 지첨서 작성 경위 > 전교사(전투교육사령부) 사령관의 작전계획을 매일 계엄사령관에게 직접 들고 가서 보고한 사람은 전교사 작전참모가 아니라 2군사령부 작전참모였다. 이는 절묘한 조치였다. 왜냐하면 2군 작전참모가 알고 있는 상황지식은 모두 진종채 2군사령관에게 곧바로 알려지게 되고, 진종채 2군사령관의 지침은 곧바로 전교사령관의 작전 계획에 반영되기 때문이었다. 보고 계층을 한단계 줄임으로써 이는 엄청난 시간을 절약하고 있을 수 있는 오해나 착오를 예방하는 방법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드디어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5월 25일 아침 4시에 김재명 작전참모부장에게 광주재진입작전 지침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김재명 작전참모부장은 광주재진입작전 지침서 초안을 작성하여 5월 25일 아침 6시경에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있던 이희성 계엄사령관에게 보고했고,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6시 10분경 김재명 작전참모부장을 대동하고 주영복 국방장관 공관으로 가서 해군, 공군 참모총장과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배석한 자리에서 광주재진입작전 지침서를 설명하고 광주재진입작전을 5월 27일 00시 01분 이후에 실시하는 것으로 보고했다.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그 날 오후 2시 30분부터 4시20분까지 1시간 50분 동안 최규하 대통령에게 광주재진입작전계획을 보고하여 승인을 받았다. 광주 재진입작전은 소준열 현지 사령관이 입안하여 계엄사령관이 수정하였고,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현장 사령관에 의해 수행된 것이다. 여기에는 보안사령관이나 중앙정보부장서리 등이 간여할 수도 없고, 간여할 환경도 아니었다. 이를 전두환이 주도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군에 대한 모독이요 몰상식 그 자체다. 군은 전두환의 사병도 아니며 대통령의 사병도 아닌 것이다. 군 장성들, 장교들은 하나하나의 인격체이지 도적떼처럼 두령을 모시는 무지렁이들이 아닌 것이다.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7시 45분에 육군본부에서 참모차장, 작전참모부장과 군수참모부장이 참석한 광주재진입작전 대책회의를 열어 준비상황을 지시한 후 김재명 작전참모부장에게 광주에 내려가 소준열 전교사 사령관에게 광주재진입작전 지침서를 직접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김재명 작전참모부장은 이희성 계엄사령광의 지시에 따라 대책회의가 끝난 직후인 5월 25일 12시경에 광주로 가서 소준열 전교사 사령관에게 광주재진입작전 지침서를 교부했다. 이날은 비가 많이내려 헬기를 띄울수가 없어 규정상 참모총장과 참모차장만이 탈수 있는 쌍발 경비행기 U-21기를 타고 가야 했고, 그래서 참모차장이 황영시와 함께 타고 갔던 것이다. 김재명 작전참모부장이 입안한 상무충정작전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육군본부작전교육참모부 작성 “상무충정작전실시판단”) < 상무충무작전 지침서 > 1. 상황 가. 1980년 5월 18일부터 시작된 광주지구 및 그 일원의 소요사태는 23일 이후 이성을 되찾아가는 징후가 보임. 나. 폭도들은 상당수의 무기 및 장비를 탈취 확보하고 있으며 주요 도로변에는 기관총을 배치하고 각종 장애물을 구축하는 등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여 양민을 협박하며 난동을 부리고 있음. 다. 군은 광주지역의 격심한 소요난동사태에 대처하여 양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노획하고 민족의 비극을 막기 위하여 선무작전, 봉쇄작전을 실시하여 대부분의 시민들이 이성을 되찾도록 최선의 협력을 경주하였고 민족 역사상 오점을 피하기 위하여 비상한 인내와 자제력을 견지하여 왔음. 라. 광주지구의 서민층은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의 고갈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으며 또한 의약품의 고갈로 노약자 및 환자의 희생이 증대되고 있어 이와 같이 계속되면 새로운 집단범죄의 발생이 우려됨. 마. 지구내의 폭도들의 상당수가 살인, 방화 등의 흉악범 및 불량배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계엄군의 선무공작 활동에 의한 순화효과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며 시민자치 능력에 의한 사태수습 및 치안회복의 가능성은 기대할 수 없음. 바. 지역내의 치안공백 상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이를 이용한 불순분자 내지 북괴무장공비의 침투 가능성이 증대되고 있음. 사. 난동 6일째부터는 선량한 시민의 흥분 기세가 점차 진정됨으로써 공산주의자와 폭도 그리고 시민이 분리되어 진압작전을 실시할 여건이 갖추어져 가고 있음. 2. 작전지침 가. 본 진압작전(상무충정작전)은 전투병과교육사령관 책임하에 실시할 것. 나. 작전 중 양민 및 계엄군의 희생을 최소로 할 대책을 강구할 것. 다. 5월 27일 00시 01분에 작전을 개시할 것. 3. 작전지도방법 가. 본 작전은 민족사적 의의를 갖는 작전이며 국민의 보루인 국군의 사명을 다하는 성전이어야 함. 나. 공산당과 폭도는 격파하고 양민에겐 필히 피해가 없는 작전이 되어야 함. 다. 군인가족, 정부관공리 가족의 보호책을 수립할 것 라. 군인다운 행동으로 양민, 노약자, 연소자, 노약자 보호할 것. < 국방장관 주재 오찬 회의 > 주영복 국방장관은 광주재진입작전 계획이 확정되자 5월 25일 12시에 합참의장, 해군, 공군 참모총장, 중앙정보부장서리, 수도경비사령관이 참석하는 간담회를 주재했다. 주영복 국방장관이 간담회를 연 것은 군 수뇌부와 국가정보를 총괄하는 중앙정보부장, 그리고 서울의 치안책임을 맡고 있던 수도경비사령관에게 광주재진입작전이 실시된다는 사실을 알리고 광주재진입작전에 따르는‘유관기관과의 협조’를 위한 것이었을 뿐‘광주재진입작전을 심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국방부 간담회에서는 상무충정작전이 실시될 경우 예상되는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에게 군사력의 증강배치를 요청하기로 했다. < 최규하 대통령 주재의 광주현장 대책회의 > 전두환, 이희성 등으로부터“마지막으로 대통령께서 광주로 내려가셔서 한번 더 호소를 해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는 건의를 받은 최규하 대통령은 5월 25일 17시 40분경 광주에 내려가 전교사를 방문하고 주영복 국방장관, 계엄사령관, 소준열 전교사 사령관과 김종환 내무장관, 진의종 보건사회부장관, 최종환 건설부장관 등이 배석한 가운데 광주사태에 관한 현지 대책회의를 개최했다. 대책회의에서 소준열 전교사 사령관은 광주사태에 관한 상황을 보고했고, 최규하 대통령은 소준열 전교사 사령관에게 광주재진입작전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소준열 전교사 사령관은“작전은 제가 책임을 집니다. 작전을 안 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지만 불가피할 때에는 차선책을 세울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광주재진입작전의 불가피성을 건의했으며 이희성 계엄사령관도 광주재진입작전의 실시를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최규하 대통령은 광주재진입작전이 실시되면 희생자가 얼마나 생기겠느냐고 물었다. 김재명 육군본부 작전교육참모부장은 150여명의 사상자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최규하 대통령은 관계관들이 잘 협조하여 희생자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 달라고 당부했다. < 내가 던진 출사표, 조국이여 영원하라 > 이 제목은 전투교육사령부 작전참모 김순현 장군의 글로 김재명 장군의 회고록에 들어있다. 여기에서 출사표란 재진입 작전계획을 의미한다. 글의 요점만 발췌 요약한다. 이 글에는 당시 최규하 대통령의 기세가 잘 드러나 있으며, 그 기세는 군부에 주눅들어 있는 모습이 아니라 당당한 군주의 모습이었다. 5월 25일, 소준열 사령관(육사10기)이 그의 작전참모인 나에게 육본에서 작전참모부장 김재명(소장 10기)장군이 곧 비행장에 도착할 것이니 모시고 오라는 지시를 하였다. 소준열 사령관실에 도착한 작전참모부장은 계엄사령관 이희성 대장의 작전지침을 설명하고 이를 정식으로 수교하였다. 그리고 사령관을 비롯한 특전사령관(정호용 소장11기), 3개 특전여단장(최웅, 최세창, 신우식 준장), 20사단장(박준병 소장 12기)보안사 최예섭 장군등과 함께 사태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이때 최규하 대통령께서 현지방문차 출발하셨다는 급보가 사령관에게 전달되었다. 전교사령관 및 참모들은 이 갑작스런 국군최고통수권자이신 대통령의 방문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 현지 상황처리에 급급한 나머지, 대통령을 모실 수 있는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해서 사령부까지 차량으로 이동하는데 소요되는 약 1시간 정도의 시간 밖에 없었다. (생략) 차트사가 쓴 표지를 합철해서 2층 소회의실로 뛰어 갔다. 차트를 걸고 지시봉을 들고 서기가 무섭게 회의실 문이 열리고 대통령 일행이 들이닥쳤다. 중앙에는 대통령께서 앉으시고 좌측 열에는 국방장관(주영복), 참모총장(이희성 대장), 작전참모부장(김재명 소장), 전교사부사령관(김기식 소장)이 착석했고, 우측 열에는 방위협의회 의장인 전남도지사(장형태), 광주시장(구용상), 중정지부장(박정인), 경찰국장(박용학)순으로 자리를 잡았다. 소준열 사령관이 대통령께 보고를 했고 나는 차트를 넘겼다. (생략) 전교사령관 책임하에 실시할 수 있도록 승인해 주실 것을 건의했다. 시종 침통한 분위기 속에 보고를 경청한 대통령은 도방위협의회 의장인 도지사를 향하여“장지사는 이 작전을 어떻게 생각하시오”라고 물었다. 장지사는 대통령의 하문에 그저 고개를 숙여 숙배하면서“각하 죄송합니다”라고 엉뚱한 답변을 하였다. 그러자 이희성 참모총장이“장지사 그게 무슨 말이요”하고 힐책하자 장지사는 참모총장을 향해 똑같은 자세로 고개를 숙여 숙배하면서“제가 무능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라고 직답을 피한 엉뚱한 대답을 했다. 참모총장이 책상을 치면서“그게 무슨 말이요. 도방위협의회 의장으로서 계엄군에 작전을 요청하겠다는 것이요, 안하겠다는 것이요”라고 언성을 높였다. 대통령훈령에 의하면 후방지역 작전은 사태발생시 도지사가 의장이 되는 도방위협의회 (군부대장, 경찰국장, 기관장으로 구성)에서 지역 내 가용한 모든 자원으로 수습하고 불가능할 시 중앙방위협의회 의장인 대통령에게 건의하도록 되어 있었다.
흥분한 참모총장을 향해 대통령께서는“가만있어”하고 말을 막았다. 이어서 단상에 서 있는 소준열 사령관을 향하여“그 작전을 시행한다면 얼마나 희생자가 날것 같소”라고 하문하셨다. 순간, 장관, 참모총장, 사령관 모두에는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누군가가 답변을 해야 할 순간이었다. 김재명 장군이 나섰다.“어느 정도의 희생은 각오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이에 대통령은“어느 정도란 얼마를 말하는 것이오”라고 숫자를 요구하셨다. 김재명 장군은“약 150여명 정도는 각오해야 될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생략) 대답이 끝나자마자 대통령께서 벌떡 일어나시더니“내가 직접 도청으로 가서 학생대표를 만나 보겠다”고 말씀하시면서 회의실 밖으로 나가시자 모두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대통령께서 도청으로 가자며 나서자 모두가 우르르 따라 나섰다. 대통령이 무력시위대에게 찾아간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드디어 장관, 총장, 작전참모부장, 사령관이 얼싸 안다시피하여 접견실로 밀어 넣으면서“각하는 이 나라의 최고통수권자 이십니다. 도청에 가셔서 만일의 사태(납치되거나 억류되면)가 발생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국가안위를 생각하십시오”등등 간절한 애원들을 쏟아냈다. 드디어 대통령도 좌정하셨다.“각하, 하실 말씀이 계시면 녹음을 하십시오”소준열 사령관은 재빨리 녹음기를 준비시켜 대통령 앞에 갖다 놓았다. 대통령도 할수 없다는 듯이 메모지 위에 말씀하실 요지를 대략 정리하셨다. “친애하는 광주시민, 그리고 애국학생 여러분, 저 최규하 대통령입니다. 지금 광주에 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직접 만나 뵙지 못하고 이렇게 녹음방송으로 대신함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취지로 시작하여“하루속히 여러분이 원하는 참된 민주주의로 광주시민이 평온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라는 말로 대통령의 애절하고도 눈물어린 호소를 마감했다. 그리고 대통령은 아무 말씀없이 떠나 가셨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녹음은 즉시, 경비행기(L-19)에 의한 공중방송으로 도청상공과 광주시 전역에 전파되었다. 그 후 작전참모부장 김재명 장군이 수교한 작전지침(출사표)의“본 작전은 전교사령관 책임하에 실시한다” 에 근거하여 광주시 탈환작전은 전교사령관 소준열 장군의 전적인 결심에 의해 실시되었다. 결과는 최소한의 희생자를 낸 세계전사에 유례가 없는 성공적인 작전으로 종결되었다. 그리고 최대통령께서 녹음방송을 통해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인사말처럼 오늘의 광주는“참된 민주주의로 평온을 찾아”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2020.5.6. 지만원 **************************************************************************************************** < 비봉출판사:역사로서의 5.18 제4권 : 부록2 1980년 5.18을 전후한 시기의 최규하 대통령의 담화문 > 특별 성명 (1980년 5월 18일) 국민 여러분 ! 작금의 국제정세는 동서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사태를 위시(爲始)하여, 동북아에 있어서의 소련의 군사력 증강 등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부안요인이 증대되고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계속되는 사회혼란을 이용한 북한공산집단의 대남 적화책동이 날로 격증되고 우리 사회교란을 목적으로 한 무장간첩의 계속적인 침투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학원의 소요사태 등을 고무,찬양,선동함으로써 남침의 결정적 시기조성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중대한 시기에 일부 정치인,학생 및 근로자들의 무책임한 경거망동은 이 사회를 혼란과 무질서,선동과 파괴가 난무하는 무법지대로 만들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사회혼란의 여파는 수출부진과 경기침체를 심화시키면서 노사분규와 실업이 증가함으로써 사회불안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어 문자 그대로 우리 국가는 중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 여러분! 나는 이미 지난 4월 14일「내외정세에 관한 담화」를 통하여 우리 모두가 자제와 화합으로 국가적 시련을 극복하자고 호소한 바 있으며, 4월 30일에 개최된 계엄 지휘관회의는 학원 및 일부 노조의 난동사태가 법치주의 원칙과 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엄단되어야 한다는 것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연한 계엄 하에서 학원소요가 진정되기는 커녕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현실 정치문제에 깊이 간여하면서 교외 소요로 과열 폭력화되어 감으로써 극심한 사회혼란을 야기하고 국방 및 치안력의 투입을 강요하는 사태로 발전되어 막대한 국력의 소모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질서회복에 앞장서야할 지도급 정치인들이 정부의 안정유지노력을 외면하고 오히려 사회불안을 선동,자극함으로써 소요사래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가 더 이상 계속된다면 그간 온 국민이 땀흘려 쌓아 올린 발전의 성과가 허물어지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국기(國基)마저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할 우려가 없지 않습니다. 이에 정부는 국가를 보위하고 3천 7백만 국민의 생존권을 수호하며,안정속에 성장과 발전을 바라고 있는 대다수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여 일대 단안(斷案)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나는 대통령으로서 헌법과 관계법규의 규정된 바에 입각하여. 1980년 5월 17일 24시를 기하여 현 지역계엄을 전국비상계엄으로 전환 선포하고. 국가의 기강과 사회안정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이번 조치로 국민의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을 것이며, 모든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으로서 사명감을 새로이 하고 맡은 바 직분에 충실할 것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한편 정부는 국내에서의 외국인의 경제활동을 권장하고 이를 보장할 것입니다. 또한 1979년 12월 21일자 본인의 대통령취임사를 비롯하여 기회있을 때마다 누차 천명한 바 있는 정치발전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으며 이를 계속해서 착실히 추전해 나갈 것입니다. 공공의 안녕질서와 사회안정 없이는 정치발전도 기약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앞으로 정부는 국민생활의 안정과 사회정의의 구현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며. 군은 국토방위의 신성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북한공산집단의 위협에 철통같이 대처하여 나갈 것입니다. 나는 이번 조치의 부가피성을 거듭 강조하면서 국민 모두가 이해와 협조로 소이(小異)를 버리고 대동단결하여 이 비상시국을 극복하면서 지속적인 국가발전과 민주사회의 건설을 위해 다 같이 매진할 것을 간곡히 당부드리는 바입니다. 광주시민에게 보내는 특별담화 (1980년 5월 25일) 친애하는 광주시민 여러분! 내가 우리나라의 대통령 최규하(崔圭夏) 올시다. 이렇게 광주근교에서 라디오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사태에 대해서 가슴 아픔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바로 두달전인 3월 20일경에 이 고장을 방문해서 광주시민 여러분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면서 금년도 연두 순시를 가졌던 것이 바로 엊그제께 일 같습니다. 그 당시 나는 광주시민들의 음료수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광주의 관계관들과 같이 석곡(石谷) 수원지를 시찰한 것을 기억을 하고,음료수를 증가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수행왔던 관계 장관들과 도 당국에 지시하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바로 이어서 우리 전라남도 도민은 말할것도 없고 우리 경제발전을 위한 대 역사의 하나인 영산강(榮山江) 하구의 제방공사를 우중에 시찰을 하면서 거기에서 땀 흘려 일하고 있는 근로자들,기술자들과 대화를 나눈 기억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엄청난 사태가 발생해서 그 당시와 사정이 달라진 것을 나는 통탄하게 생각을 하고 우리나라의 최고 책임자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는 바입니다. 그 동안 이 사태로 인해서 희생을 당하신 분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가족의 슬픔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또 절대다수의 광주시민 여러분들은 치안부재 상황속에서 나날을 불안속에서 보내고 계시고,또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계시리라고 생각됩니다. 여러분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려 둡니다. 그 원인이야 어쨌든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이것이 오래 계속되면 누가 잘 잘못이라는 것을 따질 겨를도 없이 우리 대한민국의 국가안위에 관계되는 중대사태가 될 위힘성마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떠한 문제때문에 일시적인 감정이나 또는 흥분으로 말미암아 난동에 가담한 사람들,특히 청소년들은 그 결과가 어떠한 것이 될지 이성을 되찾고 냉정히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문제가 있다면 대결을 통해서가 아니라 서로 대화를 통해서 해결을 해야 될 것입니다. 다같은 우리 동포요,우리 국민들인 이상,우리가 얘기를 해서 해결할수 없는 그러한 문제가 나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 여러가지 어려운 세계 정세 속에서 그리고 국제경제 상황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마당에 우리가 합심 협력해서 일을 해 나가도 국가적인 난국을 능히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매우 우려되는 이러한 판국에 있어서 우리 국민들끼리 서로 대결을 한대서야 이 어찌 문화국민 이라고 하겠습니까. 우리가 항상 잊어서는 안될 일은 이러한 우리들의 대결상황을 북한 공산집단이 악용하고자 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하고 우리가 알아 두어야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냉정과 이성을 되찾고 일시적인 흥분과 격분에 의해서 총기를 들고 다니는 청소년 여러분들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총기를 반환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부모, 형제,자매들을 안심시켜 주셔야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린춘(隣春)을 회복하는 데 협력을 해야만 될 것입니다. 정부는 현재 모든 준비를 다하고 그 동안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여러가지 피해를 본데 대해서 최대한의 복구와 구호를 할 것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올시다. 청소년 여러분들은 조속히 냉정을 되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일시적인 흥분과 또 일시적인 감정에 의해서 잘못된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정부는 최대의 관용을 베풀고 不問에 붙일 것을 말씀드려 두고자 합니다. 지금 정부와 그리고 전국민은 광주시민 여러분들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여러분들의 고생을 덜어드리기 위해서 다소라도 도움이 되고자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치안이 잡히지 않는 이 마당에 있어서 준비하고 있는 식량, 의류, 의약품, 기타 구호품들을 전달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치안이 조속히 확보됨으로써 다 같이 지나간 일을 잊고 복구작업에 착수할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어야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광주시민 여러분! 여러분들은 사태의 심각성과 이러한 상황이 장기간 계속될 때에 있어서 이것이 국가의 안위와 직결된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시고 냉정과 이성을 되찾아서 슬기롭게 이 불행한 사태를 수습해 나가도록 할 것을 간곡히 당부드리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제1차회의 유시(諭示) (1980년 5월 31일) 나는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난국을 극복하고 국가보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선포된 전국 비상계엄 하에서. 내각과 계엄군 당국 간의 협조체제를 긴밀히 하기 위하여「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난해의 10.26사태 후 대내외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였으나,그간 축적된 국력을 바탕으로 한 대다수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로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면서 여러 난제들을 하나하나 착실하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정부는 국가의 안전보장을 강화하고 사회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면서,국민생활의 안정과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기하는 한편으로 질서정연하고 착실한 정치발전 등을 올해 시정 목표로 설정하고 국정 전반에 걸쳐 이 목표달성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근래 사회 일각에서는 시국의 중대성을 외면한 채 사회불안과 혼란을 야기하는 언동을 일삼는가 하면. 현실 정치문제에 관여하기 시작한 학생들의 시위가 점차 격화되어 마침내 공공의 안녕질서를 파괴하고 사회불안을 조성하는 집단적인 가두시위로 확대되었습니다. 특히 이번 광주사태는 그 원인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국법질서를 교란하고. 국기(國基) 마저 위태롭게 할 위험성올 내포한 중대한 사태였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다대수 선량한 광주시민들의 자제와 우리 군의 인내성 있는 대처로 사태가 일단 수습되었습니다만. 우리 모두가 광주사태의 불행을 깊이 자성하여 이를 전화위복의 전기로 삼아,관용과 호양(互讓)으로 화합 단결함으로써,공공의 안녕질서를 회복하고 사회안정을 이룩하는 데 상호 협력하여야 되겠습니다. 정부는 지난 5월 17일 학생들의 가두시위와 소요사태의 악화로, 공공의 안녕질서가 파괴되는 심각한 상황에서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의 생존권을 수호해야 할 정부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지역계엄을 전국계엄으로 전환 선포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안전보장 태세의 강화와 국가보위를 위해서는 물론,국민생활의 안정과 경제난의 타개를 위해서도 공공질서의 유지와 사회의 안정이 긴요함은 더 말할 나위도 없겠습니다. 또한 국민적 여망에 따른 정치발전도 국법질서유지와 사회안정의 바탕 위에서만 추진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 국가비상시국에 대처하여 대통령으로서,또한 국가통수권자로서 헌법에 명시된 바 국가보위의 책임을 완수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헌법과 관계법령에 입각하여 대통령 자문, 보좌기구로「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한 것입니다. 대책위원 여러분은 이러한 나의 뜻과 여러분에게 부하(負荷)된 사명을 깊이 인식하여 군,관,민이 한 덩어리가 되어 질서와 안정 속에 난국을 극복하고 지속적인 국가발전을 이룩할 수 있도록 애국심과 슬기를 발휘해 주기를 당부하고자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장구한 역사를 통하여 수많은 국난을 겪으면서도 민족사의 정통성을 연면히 수호 발전시켜 온 우리 조상들과 선배들의 애국애족의 정신을 일깨워 애국심과 단합된 힘을 발휘할 때입니다. 대책위원 여러분은 당면한 비상시국에 임하여 헌신의 각오로 사(私)를 버리고 공(公)을 위하여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해 주기 바랍니다. 최근의 어려운 경제사정 속에 국민생활의 안정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국민이 원하는 바가 어디에 있는가를 헤아려 행정 전반과 계엄업무 수행에 반영되도록 노력하여 지속적인 국가발전에 기여해야 할 것입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제1차 회의에 즈음하여, 나는 무엇보다도 공공질서의 유지와 사회안정의 중요성율 거듭 강조하면서, 우리 모두가 국가를 보위하고, 3천7백만 국민의 생존권을 수호하는데 합심 노력할 것올 대책위원 여러분과 함께 다짐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국가기강 확립에 관한 담화 (1980년 6월 12일)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 나는 그간 국내외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하여, 나라 일을 걱정하면서, 침착과 자제로 시국수습을 위한 정부의 노력에 협조하여 주신 국민 여러분에게 이 자리를 빌어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간 우리 사회는 불법적 시위와 소요 등 혼란이 계속되었으나, 이 같은 일들이 우선 수습되어,이제 우리 국민 모두가 지난 일을 반성하면서.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를 냉철하게 생각해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0.26사태 후 지금까지의 지난 일들을 조용히 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원수의 돌연한 서거라는 충격적인 사태에 직면하여, 모든 일이 황망한 중에서 우리 국민은 냉정과 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정부와 국민이 뜻을 모아 국민적 합의 기반을 이룩하고,이 토대 위에서 시대적 변천에 대응하기 위한 제반 준비를 진행하였던 것입니다. 나는 이를 배경으로 하여 작년 11월 10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시국에 관한 특별담화」를 통하여“새로 선출되는 대통령은 현행 헌법에 규정된 잔여임기를 채우지 않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한 빠른 기간 내에 각계각층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들어서 헌법을 개정하고, 그 헌법에 따라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하고,“이렇게 하는 것이 안정을 바라는 국민의 염원에 부응하면서 헌정질서룹 유지하는 가운데 이 나라 민주주의를 착실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가장 슬기로운 길이며 또한 순리”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대다수 국민의 여망에 따른 이 같은 소신에 입각하여 작년 12월 21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나는 취임사를 통해“앞으로 특변한 사정이 없는 한, 1년 정도면 국민의 대다수가 찬동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헌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이어서 이에 수반되는 필요한 제반조치를 착실하게 취해서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공명정대한 선거를 실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이른바 정치발전에 관한 정부의 입장을 밝혔던 것입니다. 이와 함께 나는“우리 사회의 튼튼한 안정기반이 곧 경제난국올 타개하면서 정치적 발전을 추진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고 분명히 지적하고, 우리 국민 모두가 인내와 자제로 화합단결할 것을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나는 이 소신을 금년 1월 18일에 가졌던 연두 기자회견에서도 되풀이 밝히면서, 대다수 국민이 찬동할 수 있고, 또 지속적인 민주발전의 기틀이 되는 훌륭한 헌법을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해 사회안정을 바탕으로 질서정연하게 정치발전을 추진할 것을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국가안전보장의 강화, 사회안정과 질서유지, 민생안정과 경제성장, 그리고 착실한 정치발전 등을 올해 시정목표로 설정하여 국정 전반에 걸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여 왔습니다. 특히 10.26사태 후,북한공산집단의 심상치 않은 일련의 움직임에 비추어 국방태세를 더욱 튼튼히 하고자 필요한 대비책올 강구한 것을 비롯하여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생활의 안정,그리고 정치발전 등 중요한 국사를 위해 영일(寧日)이 없는 나날을 보내 왔습니다. 국민적인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기 위하여 작년 12월 8일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를 해제한 데 이어, 취임식을 전후하여서는 광범위한 사면 조치를 취하였으며, 금년 2월 29일에는 긴급조치 위반자에 대한 부권 조치도 단행하였습니다. 또한 국민적인 지혜를 모아 이를 국정에 반영하고자 2월 22일에는「국정자문회의」를 설치하여,매우 유익하고 솔직한 의견교환과 토론을 계속하여 왔습니다. 이와 함께 1월말에는 헌법개정 작업을 위한 기초자료를 마련하기 위하여 정부 내에「헌법 연구반」을 만들어 연구와 자료작성을 진행시키는 한편,3월 14일에는「헌법개정 심의위원회」를 설치,그간 이 위원회는 여러차례 회의를 개최하면서 개헌을 위한 심의를 본격화하였습니다. 한편 세계적인 경제난국에 처하여 국민생활의 안정과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도모하고자 환율과 금리문제를 포함한 경제조치 등 몇 가지의 중요한 경제시책을 수립 실시하여 왔습니다. 이 일련의 조치들은 이미 내가 국민 여러분에게 밝혔던 바를 하나 하나 어김없이 실천하여 온 몇 가지의 예인 것입니다. 이와 함께 나는 국민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치발전뿐만 아니라 국가안전보장이나 국민생활의 안정을 위해서도, 공공질서와 사회안정이 필요불가결하다는 점을 되풀이 강조하였던 것을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국민 여러분! 민주발전이란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절차나 과정이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합법적이고 질서있는 가운데 서로 대화와 협조와 타협을 통해서, 다시 말씀드려 민주적인 방법으로 추진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불법적인 집단시위나 폭력 등의 수단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면, 그 목표로 하는 바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이는 결코 민주적인 것이라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근래 우리 사회에서 국법을 경시하는 풍조가 일기 시작하여 무질서와 혼란이 야기됨으로써, 우리나라는 매우 어려운 국면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부 근로자들이 합법적인 교섭 대신 농성과 폭력으로 요구조건을 관철하려는 풍조가 일어, 마침내 사북(舍北) 사태와 같은 난동을 가져오기도 하였습니다. 또 학원내의 문제는 대화를 통해서 자율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부는 꾸준한 노력을 기울였으나,학생들의 시위가 현실정치 문제에 직접 관여하면서 거리로 쏟아져 나와 공공질서와 사회안정을 크게 해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광주사태는 국법질서의 교란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안위에 직결되는 중대한 사태였습니다. 나는 국가보위의 책임을 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이 사태를 수습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계엄군에 의하여 질서가 일단 회복된 이 마당에,나는 한때 치안부재의 상태로 말미암아 부의의 고초를 당한 대다수 광주시민 여러분에게 유감과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내가 현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일시적인 감정이나 흥분으로 난동에 가담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최대의 관용을 베풀 것을 이미 관계당국에 지시하였습니다. 정부와 국민 모두가 이번 일의 쓰라린 교훈을 거울삼아 이 같은 일이 다시는 없도록 국민적 화합과 단결을 위한 계기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정치발전에 있어서는 정치인들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당리당략을 초월하여 국가적인 견지에서 정치발전을 진실로 원한다면,난국 극복을 위한 공동의 노력에 당연히 합심 협력하여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아마도 지금 우리나라에서 민주적 정치발전을 원치 않는 국민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과 자정에 대해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마는, 민주주의도 국가가 있고 국민이 살아야 비로소 존재할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일부 정치세력은 마치 민주주의와 자유를 독점물인양 내세우면서 국민간의 분열과 대립을 초래할 무책임한 언동을 하는가 하면. 사회불안 요인을 오히려 자극함으로써 무질서와 혼란을 가중시킨 경우도 없지 않았습니다. 이같은 사회혼란의 계속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의 안전보장은 위태롭게 되고,그렇지 않아도 세계경제의 어려움 속에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우리 경제는 더욱 불황과 침체를 면치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근자에 와서는 생산과 수출이 둔화되기 시작하였으며, 국제수지의 불균형과 실업의 증가를 가져 오고 있습니다. 이같은 현상과 병폐가 일시적인 진통이라고 하기에는 우리나라가 처한 안보적 상황이 너무도 심각하여, 자칫하면 국가의 위난을 초래할 우려가 없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에 나는 국가를 보위하여 국민의 생존권을 수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국법질서를 회복하여 사회 안정을 기하기 위해. 헌법과 관계법령에 입각하여 대통령으로서,또한 국군 통수권자서 비상계엄 선포지역을 5월 17일 24시를 기해 전국 일원으로 변경한데 이어「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한 것입니다. 이 위원회는 어디까지나 국법질서 안에서 비상계엄령 하,대통령이 계엄업무를 지휘,감독함에 있어 자문 및 보좌기능을 담당케 하고, 내각과 계엄군 당국 간의 협조를 긴밀히 함으로써 국정을 더욱 효율화하기 위해 이를 설치한 것입니다. 우리 군은 어떠한 경우에도 국토방위의 신성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이며. 나는「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한 요원들에게 우리나라의 안전보장과 국가발전을 위하여 맡은 바 중대한 책임을 완수할 것을 지시한 바 있습니다. 이번 조치로 인하여 일반국민의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에는 아무런 불편이나 지장이 없을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실히 밝혀 두고자 합니다. 또한 이번 조치를 취하면서 이미 발표된 정치발전에 관한 정부방침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으며,이를 계속 착실히 추진할 것임을 또다시 다짐한 바 있었습니다만,아직도 일부에서 이 문제에 관한 설왕설래가 있는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나는 이 기회에 당면한 국정의 기본방향에 관하여 나의 소신을 명백히 해 두고자 합니다. 국민 여러분의 협조로 공공질서의 확립과 사회안정이 이룩된다면, 나는 학원의 정상화와 정치활동의 재개를 포함하여 우리나라의 경제,사회발전에 상응하는 정치발전을 계속 추진할 결의입니다. 이를 위하여 정부는「헌법개정 심의위원회」를 통한 개헌작업을 촉진하여, 현행헌법 규정에 따라 국민투표에 붙이게 될 개헌안을 마련, 늦어도 금년 10월 말까지는 이를 국민투표에 회부,확정 지을 방침입니다. 그 다음 필요한 법적,행정적 조치를 취하여 내년 상반기 중에 선거를 실시하고,6월말까지 새 정부를 수립,정권을 이양할 계획입니다. 한편 헌법개정 방향에 관하여도 대통령취임사와「헌법개정 심의위원회」의 개회식 인사 등에서 나는 몇 가지의 견해를 표명한 바 있음을 기억하고 계실 줄 믿습니다. 그것을 다시 되풀이하면 앞으로 마련될 헌법개정안은,첫째로 우리나라의 국토가 양단된 상태에서 남북한 간에 대치가 계속되고 있는 냉엄한 현실에 입각하여,국가의 계속성을 수호하고 국가보위를 확고히 할수 있는 헌법이 되어야 하겠다는 점, 둘째로 과거의 쓰라린 경험을 거울삼아 권력의 남용과 정치적 부패를 방지할 수 있는 헌법이 되어야 하겠다는 점, 셋째로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추어, 극도의 국론의 분열이나 사회혼란을 방지할 수 있는 헌법이 되어야 할 것이고, 넷째로 우리가 사회정의를 구현해 나가되,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유경제 체제의 원리에 근거해야 하겠다는 점 등을 강조하였던 것입니나. 이러한 나의 견해는 헌법개정 논의에 있어서 이를 참고로 하여, 국가의 현실과 장래를 깊이 생각하면서 국민적인 합의를 조성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되고자 표명한 것이었습니다.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을 가지고 일부에서는 오해를 하고, 혹은 정부가 개헌안을 미리 만들어 놓고 이를 강행하려고 한다는 등의 근거없는 비난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오직 헌법개정에 있어서 국민들의 의사의 최대공약수를 집약하여 장차 역사의 오점이 되거나 후회를 남기지 않을 훌륭한 헌법을 만들어 우리나라를 부강한 민주국가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는 일념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정부는 헌법개정안을 작성함에 있어「헌법개정 심의위원회」로 하여금 그간 국회의「헌법개정 심의특별위원회」가 다룬 개헌안의 내용을 존중하고,각계에서 제시한 의견도 신중히 참작하여 대다수 국민이 찬동할 수 있는 그러한 헌법을 마련하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들의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을 전복하고,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 하고자 하는 북한공산집단의 적화통일 전략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 그들이 우리나라의 정세를 악용하여. 저들의 목적을 추구하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획책하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인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선전매체를 총동원하고, 대중집회를 열어 우리 사회의 교란을 목적으로 한 비방과 선동을 계속하는 한편,대외적으로는 우리의 국내정세를 허위와 모략으로 악선전하는 등, 우리나라의 고립화를 위한 온갖 책동을 격화하고 있습니다. 나라와 겨레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으로 굳게 뭉친 우리 군은 일사불란한 통수체계 아래 계속 북한공산집단의 군사동향을 주시하면서 철통같은 방위태세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 내부의 무질서와 혼란이 계속된다면, 이는 북한공산집단에게 직접,간접의 침략충동을 일으키게 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눈을 밖으로 돌리면 동서간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세계적 전략의 요충이며 산유국이 집중되어 있는 중동지역에서 대결과 충돌이 거듭되고 있습니다. 동북아에 있어서는 강대국 간의 관계가 재편됨으로써,이 지역은 안전보장 면에서 매우 유동적인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침체와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국제경제는 잇달은 원유가의 앙등과 수급사정의 악화로 말미암아 더욱 어려운 국면에 처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비산유 개발도상국인 우리나라는 원유를 전적으로 해외에 의존하고 있어 중동지역의 정세 추이가 우리나라의 경제는 물론 안전보장 면에 대해서도 큰 영향을 미치게 한다는 것은 더 설명드릴 필요 조차 없겠습니다. 지난 5월 중순 나는 우리나라의 경제난에 대처하고 1980년대의 중동 각국과의 협력관계에 새 국면을 개척하고자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두 나라를 방문하고 있던 중에, 학생소요 등으로 불안정한 시국에 관하여 보고를 받고,일정을 앞당겨 귀국하였던 것입니다. 다행히 두 나라의 국왕을 비롯한 고위지도층 인사들의 우리나라에 대한 이해와 협조로 나의 방문 목적이 달성된 것을 나는 국민 여러분과 함께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크나큰 시련에 직면해 있을 뿐 아니라, 시대적으로도 하나의 전환기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나라가 처한 현실을 올바로 보고, 국민 모두가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임을 명심하여. 신뢰와 호양(互讓)으로 화합 단결해야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전부가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이른바 흑백논리를 고집하여 지난날을 송두리째 부정하여 역사를 단절시키려고 해서도 안될 것이며,반대로 지난날에 얽매여 시대적 요청에 따른 정치발전의 필요성을 외면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시대적 변천에 지혜롭게 대처하여 미래지향적인 자세로 모든 부문에서 착실한 보완과 개혁을 이룩해 나가야 합니다. 이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국법질서와 사회기강이 확립되어야 하겠으며,특히 근래 우리가 겪었던 소요사태의 심각성에 비추어 이는 더욱 강조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공공질서와 사회안정이 유지되는 토대 위에서, 국가의 보위와 국민의 생존권 수호를 제1의적인 과제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과거 자유월남이 국론의 분열과 거듭된 집단적 시위로 인한 극도의 사회혼란으로 마침내 패망하고 말았으며, 또 그 뒤 그곳에는 자유도 없고 인권도 없고 민주주의도 찾아볼 수 없게 된 현실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최근 공산월남에서 근 5년간 억류되었다가 돌아온 이대용(李大鎔). 서병호(徐丙鎬). 안희완(安熙完) 씨 등 3명의 외교관들도 생생하게 증언한 바 있습니다. 나는 당면한 시국과 관련하여 정부의 방침을 몇 가지 밝혀 두고자 합니다. 먼저 조국이 분단되고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북한 공산집단의 이른바「대남 인민민주주의 혁명전략」에 동조하는 언동은 결코 용납될 수 없으며,국민간에 이간과 분열,대결과 투쟁을 조장 선동함으로써 사회질서를 혼란케 하는 행위가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한 집단적 시위나 난동과 소요 등 불법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합헌적인 정부를 타도하려는 행위는 이를 엄단할 것입니다. 그리고 공직자 사회의 부조리를 척결하기 위한 서정쇄신 작업을 계속 추진해 나갈 것이며, 아울러 일반사회의 정회운동도 전개해 나가면서 각종 사회악과 퇴폐풍조를 삼제(芟除)하여 건전한 사회기풍을 진작해 나갈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른바 권력형 부정축재의 조사에 있어서는 그 범위와 기간을 가급적 국한시킬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 모두가 중상과 모략,왜곡과 선동, 그리고 권모술수나 극한투쟁 등으로 고질화된 우리나라의 정치풍토를 개선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현안중인 헌법개정과 이에 따른 공명선거는 물론 정치발전의 중요한 부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고질적인 정치적 병폐를 서로 반성,시정하여 대다수 국민이 바라는 건전한 정치풍토를 조성하고자 하는 노력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정치발전의 과제라고 믿습니다. 또한 정부는 학생들의 면학풍토를 조성하는 한편 학원부조리를 시정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원리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며,공부나 연구를 제쳐놓고 불법적인 집단시위나 폭력행위를 한다는 것은 학생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학생들은 우리나라의 내일의 주인공이며,장차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실력을 기르기 위해 지금은 시간을 아껴 열심히 배우고 공부할 때인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여 오늘의 성과를 쌓아 올린 데는 우리 근로자들의 노고가 대단히 컸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근로자들의 적법하고 합당한 요구는 정부나 기업이 이를 가능한 한 받아 들이도록 성의있는 노력을 경주하여야 할 것이며,근로자들의 복지를 향상시켜 나가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선진 각국들의 경우와는 판이한 안보적 현실에 처해 있을 뿐 아니라 아직도 개발도상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노사간에 문제가 있다면 근로자와 사용주가 서로 대화와 협조로 해결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상에서 나는,우리의 당면과제들을 몇 가지 말씀드렸습니다만, 이는 이미 밝힌 금년도의 시정목표를 추진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들인 것입니다. 나는 이 기회에,특히 작년의 10.26사태 후 우리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마다 맹방인 미국이 우리나라의 실정을 이해하고, 안전보장 면에서나 경제면에서 적극적으로 협력해 준데 대해 다시한번 사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정부는 앞으로도 미국을 포함한 우방 각국들과의 유대를 더욱 긴밀히 하고,각 분야의 협력관계를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국가안보의 제일차적인 책임은 바로 우리들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되새기고 자조정신을 발휘하여야 하겠으며,또 그래야만 우방들도 우리를 더욱 신뢰하고 협력하게 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지금 우리 경제는 세계적인 불황속에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정부는 국민생활의 안정과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기하기 위하여 지난 6월 5일 수출지원과 금리를 포함한 당면 경제운용대책을 수립하였습니다. 특히 정부는 서민생활의 안정을 위해 계속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여 나갈 것입니다. 정부는 앞으로 수출증대와 고용안정을 위한 제반 시책을 효율화하여,경제난을 타개하는 데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정부와 기업과 가계가 각각 자기 직분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합심,협력 한다면 우리경제의 앞길은 점차 밝게 열리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난날 우리 국민은 거의 맨주먹으로 시작하여,온갖 고난을 이겨내면서 이만큼 국력을 기르고,국민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우리나라는 모든 면에서 과거의 빈약했던 나라가 아닙니다. 이만큼 산업화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체험과 자신이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와 국민이 혼연일체가 될 때 앞으로 국제정치, 경제면에 충격적인 변동이 없는 한 경제난국을 반드시 극복하여 온 국민이 바라는 안정적 성장을 계속해나갈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라의 안전을 지키고 우리 스스로의 생존권을 확보하면서,지금까지 이룩해 놓은 국가건설의 성과를 확대하는 한편 기필코 국민적 여망에 부응하는 정치발전을 실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문화민족이며, 법치국가의 민주국민이라는 자긍을 다시 한번 일깨워,국가의 기강을 확립하여 사회안정을 기하면서 당면한 난제들을 하나하나 착실히 해결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나는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위하여 난국 극복에 앞장을 서서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의 임무와 사명을 완수하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국민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애국심과 지혜와 단합을 호소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나라의 융성과 민주발전의 기틀을 굳건히 다지면서 안정과 평화와 번영의 대도(大道)를 향해 불퇴전의 전진을 계속해 나갑시다. 감사합니다. 서기 2020년 5월 13일 수요일 낮 2시 49분 총11시간 작성.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후보준비자 萬局 李 龍雲 |
'각종자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두환 대통령이 광주사태의 희생자라는 제언 (0) | 2020.05.17 |
---|---|
광주사태 진압 국군의 명예회복도 필요하다! (0) | 2020.05.17 |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5대 상징물 (0) | 2020.05.16 |
우리몸의 신비 (0) | 2020.05.10 |
펜데믹(pandemic)의 뜻 (0) | 2020.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