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좋은글방

이목지신(移木之信)의 후과(後果)

곽대감 2020. 1. 26. 16:33


이목지신(移木之信)의 후과(後果)

   열국지인물-진효공(秦孝公)

진효공(秦孝公),  전국시대(戰國時代 ()나라 제25대 군주다

 

특히 ()나라 출신 형법(刑法)의 대가 상앙(商鞅)을 중용하여 적폐청산에 힘을 쏟는 등 두 번의 변법(變法)을 시행함으로 나라의 기강을 세우며 급속하게 국력이 신장되고 전국시대의 강자로 부상했다

 

족보상으로는 진시황제의 증조부 격이지만 항간엔 진시황제의 친부가 여불위(呂不韋)라는 전쟁 보따리상의 아들로 기록 되어 있으니 그냥 넘어 가자 어쨌든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하는데 그 기초를 닦아 준 인물이다

 

진효공 때의 일이다.

그는 인재를 찾고 찾다 드디어 위나라 출신의 형법학자 위앙(衛鞅)이라는 걸출(傑出)한 인물을 찾아냈다

 

   어떤 법학자(法學者)의 최후

 

위앙은 부임하며 이런저런 새로운 법령을 만들었으나 즉시 선포하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법령도 백성들이 믿어 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위앙은 수도 함양성 남문에 삼 장 길이의 나무를 세우고, 관리로 하여금 그 나무를 지키게 하고,누구든지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겨 세우면 황금 열 냥을 주겠다는 방을 붙였다

 

   어떤 법학자(法學者)의 최후

 

그러나 백성들은 아무도 믿지를 않는다

 

며칠 후 위앙은 다시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겨 세우면 황금 오십 냥을 주리라 상금을 대폭 올린다

 

그러나 백성들은 더욱 의심을 가중시킬 뿐 아무도 옮기지 않는다

 

그런데 백성 중의 한 사람이이런 방을 붙인 것을 보면 절이 있을 것이고 밑져야 본전이니 좌우당간 옮겨 놓고 보자라며 그 나무를 뽑아 북문에 옮겨 세웠다

 

   어떤 법학자(法學者)의 최후

 

그곳을 지키고 있던 관리는 그 백성을 위앙에게 데리고 가 그 사실을 보고했고

 

위앙은 그 백성을 크게 칭찬하며 황금 오십 냥을 상금으로 주며나는 앞으로 백성들에게 신용을 지킬 것이다.“

 

그 백성이 오십 냥의 상금을 받은 것은 함양성내에 퍼졌고, 백성들은 위앙이 약속하는 것은 꼭 지킨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그 다음날 위앙은 새로운 법령을 선포하게 이른 것이다

이를 두고 이목지신(移木之信)이라고 하는 것이다.

 

   [1년 전 오늘] 이목지신

 

일로 . 관이 상호 신뢰를 하게 되며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 진나라 수도 함양엔 길거리에 물건이 떨어져도 가져가는 이가 없었고 대문을 열어 두고 살아도 도둑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태평성대가 아니었다

 

상앙은 적폐청산을 빌미로 자신의 정적은 물론 과거 범죄까지 물어 참혹한 형벌을 가하며 참형에 처했고 조그만 실수에도 백성들의  . 다리를 끊는 것은 물론이요 

 

보다 큰 죄를 저지르면 본인은 물론 연좌를 통해 그 가족을 몰살(沒殺)시키는 가혹한 형벌을 주었던 것이다

 

   상앙-기원전 395년?~338년) 전국시대 法가 대표하는 정치가 위대한 업적 개혁 완수 秦 나라 법의 기틀 마련한 變法 가혹한 법도 있다 秦 나라 천하통일의 초석 太子의 복수

 

하여 백성들은상군(商君: 상앙)의 법은 있어도 나라의 법은 없다라고 까지 했었다. 

 

그러나 어쨌든 진효공은 위앙에게 ()이라는 지방을 식읍으로 줌으로 그는 상앙(商鞅: 제자백가 중상자(商子)’가 상앙이다.)으로 불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그의 부귀영화는 최고도에 달했고 시쳇말로 모가지에 힘을 주고 민심을 개 거시기 취급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