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쓸데없이 말 많은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그냥 웃기만 하던 자"라고 스스로 말 하던
김종필 씨가 별세 했다.
그의 별세소식을 전하는 언론은 다양했다.
"김종필 전 총리, 신당동 자택서 별세… 향년 92세"
"큰 별이 졌다"… JP 빈소 정치권 조문 행렬 잇따라
"JP는 시대의 로맨티스트·정치 조어 연금술사"
"현대사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큰 별"
"JP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처음과 끝…당은 원래 시끄러워야"
"고인의 일생은 대한민국 격동의 역사 그 자체"
"JP, 조촐한 가족장 원하셨다… 부부 합장할 것"
"JP,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에 큰 역할한 현대사 자체"
"JP가 정치사에 남긴 걸음으로 새 미래 열어갈 때"
"JP, 각박한 정치판 로맨티스트… 큰 어른 잃었다"
"JP의 족적 지워지지 않을 것"
그런데 특이한 뉴스는 김종필 씨가 생전에 자신의 묘비명(墓碑銘)을 미리 써뒀다는 것이다..
총 121자로 써진 묘비는 김 전 총리의 장지이자 부인인 박영옥 여사가 묻혀 있는 충남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 가족묘원에 이미 놓여
있다.
김 전 총리가 써놓은 글에는 평생의 정치철학과 함께 박 여사를 향한 이러한 애틋한 마음도 담겨 있다. 특히 김 전 총리가 자신을 ‘쓸데없이
많은 물음에 웃기만 하던 자’라고 평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김 전 총리의 묘비에 “‘생각이 바르므로 사악함이 없다(시무사·思無邪)’는 말을 인생의 도리로 삼고 한평생 어기지 않았”으며 “‘경제가 궁핍하면 한결같은 마음을 가질 수가
없다(무항산이무항심·無恒産而無恒心)’는 말을 치국의 근본으로 삼았다”고 적었다.
이어 “‘나라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국리민복·國利民福)’과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함(국태민안·國泰民安)을 구현하기 위하여
헌신·진력하다보니 만년에 이르렀다”고 술회했다.
김 전 총리는 “세월의 허망함을 한탄(년구십이지 팔십구비·年九十而知 八十九非)”하며 “쓸데없이 말 많은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그냥
웃기만 하던(소이부답·笑而不答) 자”라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내조의 덕을 베풀어준 영세반려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김 전 총리가 작성했던 묘비명 전문.
’思無邪‘를
人生의 道理로 삼고
한평생 어기지 않았으며
’無恒産而無恒心‘을
治國의 根本으로 삼아
國利民福과 國泰民安을 具現하기
위하여 獻身盡力 하였거늘
晩年에 이르러
’年九十而知 八十九非‘라고 嘆하며
數多한 물음에는
’笑而不答‘하던 者-
內助의 德을 베풀어준 永世伴侶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銘 雲庭 自僎
書 靑菴 高崗
그는 일종의 인생 시말서(始末書)를 죽기 전에 미리 써놓은 셈이다. 묘비도 이미 만들어 놓았다. 세월의 허망함을 한탄하고 인생의
아무런 답도 없이 [죽음]이란 [확실]하다는 것 밖에는 남겨 놓은 것 없이 갔다. 죽으면 끝난다는 것 밖에는 주는 것 없이 갔다. 그는 영생을
모르고 갔다. 답이 있는데도 그 답을 찾지 못하고 [웃고만 살다가] 죽었다.
과연 번쩍번쩍하는 대리석으로 만든 묘비에 묘비명을 멋지게 써놓은 것이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일까?
성경은 말씀하신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묘비를 준비하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현명한 방법이 아니고 심판을 준비하고 영생의 답을 얻는 것이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요 3:16)
바람의 종 / 명상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