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날 현충원에서 눈물로 읽은 편지 “신부는 이천 서씨
가문 규수입니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는 ?” 라고 판사가 물었다.
![]()
“예”라고
대답하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마약복용으로 붙잡혔다 여섯 번째 풀려난 것이다. 판사는 “마지막 기회”라고 경고했다. 9개월 뒤 지만씨는 변호사 서향희(30)씨와 결혼을 약속하는 사이가 됐다.
박태준 전 총리 자택을 방문했다. 박 전 총리 부부에게 서씨를 인사시키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박 전 총리 부부에게 큰절을 올렸다. 인사를 받는 박 전 총리 부부의 눈엔 눈물이 그렁했다
옛 생각이 나서였다 1961년 5·16 당시 박정희 소장은 박태준
대령에게 자네는
혁명동지회 명단에 넣지 않았네.
일이 잘못되면 내 가족을 부탁하네”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과 함께 포항 벌판에서 ‘포스코’를 일군 시절이 박 전 총리의 머리를 스쳤다. 부모를
모두 흉탄에 잃고 방황하는 어쩌다 교회에 안 나오기라도 하면 측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니
안부를
알아보라”고 했다.
지만씨가
. 예비부부가 인사를 다녀간 뒤 박 전 총리의 부인 장옥자 여사는 한동안 혼수를 마련하는 일로 정신이 없었다. 지만씨가 처가에 들고 간 함도 장 여사가 챙겨준 것이다. 장 여사는 지인들에게 “결혼준비를 하는 요즘처럼 행복한 때가 없다”고 말했다 .
12월14일 2,000여명의 하객과 언론사 카메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지만씨는 서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식이 진행되는 내내 그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예식이 끝난
뒤 지만씨와
서씨는
두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몸에 꼭 맞을 폐백옷이 들어 있었다. 폐백 음식도 차려놓았다. 박태준 전 총리가 굵은 음성으로 엄숙하게 말했다.“ 각하께 보고 드리게.”지만씨가 쓴 편지가 낭독됐다. 아버님,
어머님. 지아비가 되어 이렇게 찾아뵙습니다. 이 길이 제게는 왜 이토록 길고 힘이 들었는지요. 이제 늦게나마 아버님
어머님께 자식의 도리를 한 것
가문 규수로 이름이 향희입니다. 혼인의 식은 오늘 낮 거행했으며 이제 아버님 어머님께 폐백(幣帛)의 예를 올리고자 합니다. 식장의 혼주석에 두 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영혼이 임하셔서 같이 보내주신다는 것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 저희 결혼을 축하해주시는 분들의 뜻을 잘 받들며 사는 것이 곧 아버님 어머님 뜻을 받드는 길이라 생각하고 의연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은자동아 애지중지 길러 주신 하해와 같은 은혜에 이제야 보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
'지구촌도시,생활문화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든 Russian의 고향 우크라이나 (0) | 2017.01.14 |
---|---|
六不合 七不交 / 홍콩 부호 이 가성 (0) | 2016.11.05 |
예술적인 분수 쑈 (0) | 2014.11.18 |
地球 絶景記行 (지구절경기행) (0) | 2014.10.01 |
시베리아 툰드라의 주인공 네네츠족의 삶 (1~7) (0) | 2014.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