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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날 현충원에서 눈물로 읽은 편지 /박지만

곽대감 2016. 8. 8. 23:03
 

 

결혼식 날 현충원에서 눈물로 읽은 편지


“신부는 이천 서씨 가문 규수입니다.
아버님 어머님께 폐백의 예를 올리고자 합니다…”


2004년1월30일, “결혼할 의사가 있습니까
'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는 ?”

라고 판사가 물었다.

 

 


 

 


“예”라고 대답하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마약복용으로 붙잡혔다 여섯 번째 풀려난 것이다.

판사는 “마지막 기회”라고 경고했다.

9개월 뒤 지만씨는 변호사 서향희(30)씨와

결혼을 약속하는 사이가 됐다.


얼마 후 지만씨는 서씨의 손을 잡고 서울 한남동

박태준 전 총리 자택을 방문했다.

박 전 총리 부부에게 서씨를 인사시키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박 전 총리 부부에게 큰절을 올렸다.

인사를 받는 박 전 총리 부부의 눈엔 눈물이 그렁했다

.

옛 생각이 나서였다 1961년 5·16 당시 박정희 소장은

박태준 대령에게 자네는 혁명동지회 명단에 넣지 않았네.

일이 잘못되면 내 가족을 부탁하네”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과 함께 포항 벌판에서 ‘포스코’를 일군

시절이 박 전 총리의 머리를 스쳤다.

부모를 모두 흉탄에 잃고 방황하는
지만씨를 곁에서 지켜보며 속을 태운 적도 여러 번이다.


어쩌다 교회에 안 나오기라도 하면 측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니 안부를 알아보라 했다. 씨가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사는 것이 그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

예비부부가 인사를 다녀간 뒤 박 전 총리의 부인 장옥자 여사는

한동안 혼수를 마련하는 일로 정신이 없었다.

지만씨가 처가에 들고 간 함도 장 여사가 챙겨준 것이다.

장 여사는 지인들에게 “결혼준비를 하는 요즘처럼

행복한 때가 없다”고 말했다

.


12월14일 2,000여명의 하객과 언론사 카메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지만씨는 서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식이 진행되는 내내 그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예식이 끝난 지만씨와 서씨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안장된
묘소의분향소에 보자기로 싼 것을 올려놨다.


두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은자동아 금자동아’ 하시며…
안엔 장 여사가 정성껏 마련한, 박 전 대통령과 육 여사의

몸에 꼭 맞을 폐백옷이 들어 있었다. 폐백 음식도 차려놓았다.


박태준 전 총리가 굵은 음성으로 엄숙하게 말했다.

각하께 보고 드리게.”지만씨가 쓴 편지가 낭독됐다.

아버님, 어머님.
오늘은 불효자 지만이가 한 가정의

지아비가 되어 이렇게 찾아뵙습니다.



이 길이 제게는 왜 이토록 길고 힘이 들었는지요.

이제 늦게나마 아버님 어머님께 자식의 도리를 한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신부는 이천 서씨

가문 규수로 이름이 향희입니다.



혼인의 식은 오늘 낮 거행했으며 이제 아버님 어머님께

폐백(幣帛)의 예를 올리고자 합니다. 식장의 혼주석에 두 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영혼이 임하셔서

같이 보내주신다는 것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


저희 결혼을 축하해주시는 분들의 뜻을 잘 받들며 사는 것이

곧 아버님 어머님 뜻을 받드는 길이라 생각하고 의연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은자동아 애지중지 길러 신 하해와

같은 은혜에 이제야 보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