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편이
여의치 않아 ‘빌라(우리말은 다세대 주택)’ 1층으로 이사했습니다. 집 주변은 온통 ‘쓰레기 천국’이었어요. 정화조 냄새가 불안정한 음표처럼
떠돌고 전단지가 불온한 ‘삐라’처럼 흩날리더라고요. '금이빨 삽니다' ‘일숫돈 1달 이자 전액무료’ ‘한 잔술은 옛날식 포차에서’ ‘레미콘 싸게
쓰실 분’ 등등. 이삿짐을 정리하다 바깥으로 나와 잠시 쉬는데 스라소니처럼 강퍅하게 생긴 사내가 나타나더니 담배를 물고 아는 체를 해요. “이사
오셨수?” “아, 예.” 잠깐 내게 눈길을 준 사내가 주위를 휘둘러보다 담배꽁초를 손가락으로 튕겨 내버려요. “개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린다니까!”
오래전 SNS가 없던 시절 유행했던 유머가 생각납니다. 은행에 간 화려한 옷차림의 주부가 수표로 입금을
하려는데 직원이 신분 확인을 위한 이서(裏書)를 하라네요. 그래서 쓴 글이 ‘여보 저예요~!' 그 사모님이 은행 지점장 부인이었던 것입니다.
아재 개그라고요? 다음은 직접 경험한 일로 30년도 얼추 더 되었을 터이니 역시 철 지난 이야기네요. 해외 주재 지점장 회의가 LA에서 열렸는데
마침 창업주인 오너의 2세가 관광차 지역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본인보다 몇 계단 낮은 직급의 나이 든 사람들 앞에서 특별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해 겸사겸사 훈시성 인사말을 했어요. “우리 아빠가 맨날 하는 말인데 말이죠. 어쩌구저쩌구...”
작년 10월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한 '미투(#MeToo)' 운동이 한국에서는 한 검사의 고발과 한 시인의 폭로가 부각되며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점으로 드러나고
있군요. 여성에 대한 권력형 성폭력이 본질인 미투 사례를 지켜보며 참담하고 부끄러운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일차적으로 개인의 몰지각에서 비롯한
미투 양상이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고질적인 병폐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은밀히 영향을 주고받으며 독버섯처럼 증식되고 있는 듯합니다. 유교
전통에 기반한 가부장적 사고방식, 갑을(甲乙) 위계문화, 특권층의 권력 사유화 풍조, 그에 더하여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남 탓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유치찬란한 ‘근자감(근거 없는 자만심)’ 등등.
다음은 한 대형 유통업체에서
알바로 근무하는 가까운 지인에게서 전해 들은 것으로 신뢰할 만한 이야기입니다. 마트 사회에도 엄격한 상하관계가 있다고 하네요. 위로부터
행복사원(유통업체 직원), 협력사원(입점 회사 직원), 고정 알바(직원 수준 고정직), 시간제 알바(인턴 수준 임시직). 이에 더하여 보안요원과
주차요원. 물론 그 위계질서의 맨 위쪽에는 손님이 자리합니다. 한번은 고객과 직원 간에 실랑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거친 말이 오가며 직원이
일방적으로 몰리던 중 중년 남성인 고객이 삿대질하며 하는 말이 “내가 누군 줄 알고 나한테 갑질하는 거야, 갑질이!” 참, 마트에서 근무하며
말을 전해주었다는 지인이 누구냐고요? 가족의 일원으로 나와 한방을 쓰는 가까운 여성이랍니다.
| |